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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빛으로 바꾼 종교개혁자 칼빈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8-10-29 (월) 04:00 조회 : 68
설교일 : 10월 28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마 5:13-16



어둠을 빛으로 바꾼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


마 5장 13-16절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교개혁 주일마다 이와 관련된 믿음의 선진들을 한명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루터에 대해서도 공부했고, 쯔빙글리에 대해서도 공부했고, 올해는 ‘존 칼빈’에 대해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존 칼빈’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장로교단에 속한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분들은 자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존 칼빈을 장로교회의 아버지라고 부르니까요.
그러나 존 칼빈의 영향력은 단지 ‘장로교단’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존 칼빈’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했던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라는 사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서구 국가의 번영은 제네바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결정적 원인은 칼빈의 가르침이다”(사진과 같이)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기에 막스 베버가 이런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알려면 먼저 그 당시 사회가 어떤 사회였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1. 16세기 스위스
혹시 우리 가운데 스위스에 다녀오신 분 계시나요?

스위스는 왼쪽은 프랑스, 오른쪽은 오스트리아, 북쪽은 독일, 남쪽은 이탈리아에 둘러 쌓인 작은 나라입니다. 스위스 하면 일단 알프스가 떠오르죠.

 


그러나 당시 스위스는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주교는 여전히 ‘면죄부’를 팔고 있었습니다. 면죄부가 뭔지 아시죠?
루터나 쯔빙글리 같은 믿음의 선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면죄부’를 사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는 오늘날과 같은 국가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때였기에 도시와 도시간의 전쟁이 잦았습니다. 이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도망쳐온 탈영병들이 스위스로 도망쳐 오기 일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들이 도망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그들의 지갑을 노리는 창녀와 사기꾼들까지 유럽 전역에서 스위스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기 저기 술집에, 전당포에, 오물에, 무질서에, 폭력에, 범죄에...  당시 스위스는 시장 바닥 같았습니다.

반대로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알프스 산에서 양을 치는 것 외에는 먹고 살 길이 없기에, 스위스를 떠나 주변 강대국들의 ‘용병’으로 팔려 갔습니다.
젊은이는 용병으로 팔려나가고, 대신 범죄자들이 들어오는 땅. 스위스
한마디로 당시 스위스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땅, 주변 강대국들의 온갖 오물들이 모이는 하수구 같은 장소로 전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스위스가 바뀝니다.
 
2. 제네바에서의 부름(Calling)

오늘 주인공, ‘존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의 작은 도시 ‘누와용’에서 태어납니다.
야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그를 카톨릭 사제로 키우려고 ‘파리 대학’으로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주 명석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잠시 법학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신학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러던 중 회심을 경험하게 되고, 카톨릭 사제가 아니라 개신교 목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당시 칼빈의 조국 프랑스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자신의 고국 프랑스를 떠나 ‘마틴 부처’라는 종교개혁자를 만나기 위해 스트라스부르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스트라스부르로 가지 못하고 ‘기욤 파렐’이라는 살고 있는 제네바를 경유해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이 그의 인생을 바꾸고 맙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칼빈에게 파렐이 찾아와서 ‘제네바’에 남아 함께 힘을 합해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칼빈은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죠. “No thank you”
몇 번을 간청해도 듣지 않자 파렐이 마지막에 이 말을 던집니다.
“당신이 만일 주님의 일을 돕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일만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당신을 벌하실 거요”
이 한마디에 칼빈의 생각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제네바라는 작은 도시를 개혁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되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칼빈은 ‘기욤 파렐’이라는 친구가 들려준 말 한마디에 그의 인생이 바뀌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도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겠죠.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들었던 음성은 이것이었죠.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그러나 이 음성이 단지 아브라함에게만 들려주신 음성이었까요?
이 음성은 아브라함에게만 들려진 음성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얘기냐면, 당시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바벨론의 땅 ‘우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 바벨탑을 거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는 적어도 수천년의 시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그 수천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놀고 계셨을까요?
혹 누군가를 계속 부르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비슷한 장면이 이사야서에 나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 음성에 응답한 사람이 ‘이사야’였고,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네바에서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하자’는 친구의 간청이 칼빈에게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했죠.

오늘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있는가?’
‘들을 수 있는 영적인 민감성이 살아 있는가?’
그리고 듣고 있다면 ‘그 음성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바라기는 먼저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영적인 민감성이 우리에게 살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호렙산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는데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나요?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1,12)
우리에게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아브라함처럼, 이사야처럼, 그리고 오늘 주인공 칼빈처럼 그 소리에 응답하는 결단력도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제네바의 변화
자, 이제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칼빈이 도착한 제네바라는 도시는 그렇게 어둠으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500년 전에 칼빈이 제네바에 도착 한 뒤 어떻게 변화되어 갔을까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서서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현재 모습을 볼까요!

오늘날 세계의 여러 국제 기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이곳 스위스 제네바라고 합니다.
지금은 국제 연합 UN의 본부가 뉴욕에 있지만, 그 이전 국제 연맹이었는데, 국제 연맹의 본부가 위치해 있던 곳이 제네바입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UN 유럽 본부도 제네바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제 적집사사 본부가 있는 곳이 제네바입니다. 세계 보건 기구 WHO도 제네바에 위치해 있습니다.
과거 범죄자들의 소굴과도 같었던 제네바라는 도시가 현재는 세계를 이끌고 있는 도시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 도시에 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까요?
맞습니다. ‘칼빈’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본 ‘막스 베버’라는 학자는, ‘서구 문명의 시작은 제네바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칼빈이 그곳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제네바에 28년간 머물면서 ‘제네바’라는 도시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영되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런 도시를 만들어 냅니다.
이에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제네바라는 도시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네바는 사도들의 시대 이후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그리스도가 참되게 선포되지만, 이 도시처럼 생활과 신앙이 참되게 개혁된 곳을 나는 보지 못했다” - 존 녹스
단지 말로만 끝난게 아니라 삶이 바뀌고 도시가 바뀌었다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한 도시를 바꾸는 일이 쉬웠을까요? 쉽지 않았겠죠.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인종 차별’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칼빈의 조국은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프랑스입니다.
그런데 지금 스위스에 와서 개혁을 이끌고 있으니 사람들이 고운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았겠죠.
칼빈도 우리 같은 이민자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칼빈은 당시 스위스 시민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칼빈의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성경교사’로 부임한지 1년 9개월만에 쫓겨 나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들어 주기는 하겠지만,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살라고 하니, 그렇게 말씀대로 살기는 싫은 것입니다. 이전에 먹고 놀고 즐기던 삶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에 결국 제네바를 떠나 원래 가고자했던 ‘스트라스부르’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인 ‘마틴 부처’의 주선으로 프랑스 이민자 교회를 맡아 목회를 이어가죠.

자, 그런데 여기서 그렇게 칼빈이 떠난 뒤, 제네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살맛나는 제네바가 되었을까요? 인간의 본성이 그렇지 않죠.
귀신이 떠난 빈 자리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오듯이, 칼빈이 떠난 뒤 제네바는 칼빈이 오기 전보다 더 깊은 혼돈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술집이 난무하게 되고, 깡패들과 창녀들과 부랑자의 소굴이 되어 갑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 교황청은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오라’는 유혹과 협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제네바의 시의원들이 얼른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칼빈을 찾아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시 칼빈을 모셔오려고.

3년 만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이전보다 더 강하게 도시를 바꾸어가기 시작합니다. .
과도한 음주와 가무를 법으로 금지합니다.
모든 시민들은 예배에 참석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무장되기 전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까지 잠궜다고 합니다.
옛 종교인 카톨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례명 받는 것은 금지합니다.
이런한 법들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됩니다.

또한 당시 부자들과 은행은 막대한 이자율로 가난한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칼빈은 제네바 시의 이자율을 4%로 고정해 버립니다. 4% 이상 이자를 받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가난한 사람도 함께 살아야 하는까요.
인간의 탐욕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정한 4%의 이자율은 장장 400년 동안 제네바의 이자율로 유지됩니다.

또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자를 학대하는 일을 금지하고 성적인 문란과 타락을 막기 위해 결혼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당시 유럽은 전역이 종교 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었는데, 전쟁을 피해 오갈 데 없는 난민들을 ‘제네바’는 받아 줍니다. 물론 무조건 받아 준게 아니라,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 나온 단어가 “Refugee"입니다. 지금도 쓰이고 있죠. ‘난민’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구약에 나오는 피난처(refuge)에서 단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들이 스위스 제네바의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국제기구가 왜 제네바에 다 몰려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겠죠!
이렇게 칼빈은 제네바라는 도시가 모두가 더불어 사는 하나님의 나라 되기를 꿈꿨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일에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배다’라고 말하며 개신교가 서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직업 소명설’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그때부터 스위스 제네바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하니 잘 수 밖에 없죠.
15세기까지만 해도 동양이 서양보다 훨씬 잘 살았고 문명도 앞서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나 칼빈의 ‘직업 소명설’을 통해 ‘카스트 제도’와 같은 낡은 신분제도가 타파되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받은 달란트대로 열심히 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서양이 동양을 뛰어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만약 서양에 인본주의만을 강조하는 르네상스만 있고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서양은 타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타락을 방지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해 낸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는 학교를 세워 시민들을 깨웁니다.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오고 있죠. ‘제네바 대학교’로.
이곳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을 졸업한 뒤 유럽 전역으로 나가 유럽을 바꿔가기 시작합니다. 
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졸업한 칼빈의 수제자 ‘존 낙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세웁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존 메리라는 영국 여왕은 스코틀랜드를 포기하며 이렇게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존 낙스의 기도는 10만 군대보다 무섭다” - 메리 여왕

여러분, 이것이 존 칼빈이 우리에게 전해준 유산입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한 도시를 바꾸고, 한 나라를 바꾸고,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세계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오늘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아 칼빈의 일대기와 그가 남긴 유산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훗날 역사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제네바와 관련된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1536년 스위스 제네바 시의회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운영되는 도시를 꿈꾸며 색다른 주화를 하나 만듭니다.

Post Tenebras Lux (어둠 후에 빛이)
이 주화가 만들어진 1536년은 칼빈이 바젤에게 “만일 당신이 주님의 일을 돕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일만 하며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당신을 벌하실 거요” 라는 권면을 받은 해입니다.
칼빈의 후예들로서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있는 바로 그것이 어둠이 물러가고 빛으로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