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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필그림의 꿈 '언덕 위의 도시'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8-11-27 (화) 00:40 조회 : 43
설교일 : 11월 26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마 5:13-16



청교도 필그림(Pilgrim)의 꿈, ‘언덕위의 도시’


마 5:13-16


지난주가 미국의 가장 큰 명절, 추수감사절 이었죠.
어떻게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미합중국은 1620년에 출항한 이 한척의 배 - 메이플라워호 - 를 통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청교도들이 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와 세우고자 했던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가?’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뿌리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1. 청교도(Puritan)
우리가 잘 알 듯이 400년 전에는 스페인, 포루트칼, 프랑스, 영국등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때 영국에서도 헨리8세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가서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세우죠. 그리고 수장령을 통해 자신이 영국 국교회의 머리가 됩니다.

이에 반발하고 일어선 사람들이 바로 ‘청교도’입니다.
왜 반발했을까요?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혼을 합법화 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에서 떨어져나왔죠.
이것이 유럽의 종교 개혁과 영국의 종교개혁의 차이입니다.
사실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기에도 좀 민망하죠!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와 칼빈, 독일에서는 루터가 ‘바른 신앙’을 위해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교황무오설을 주장하며 면죄부를 팔고 있었죠
그러자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종교개혁은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순수한 신앙의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이 자기 자신을 위해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종파를 세운거죠. ‘성공회’로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종교인들이 영국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청교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죠.
그래서 ‘청교도’(Puritan)라는 단어는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입니다.

그러면 당시 ‘청교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 했을까요?
청교도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주일을 지켰는지가 지금도 역사적인 기록으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합해서 통치하게 되죠.
이게 가능했던 것은, 당시는 혈통을 중시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임스 1세’가 청교도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가게 있는데 마을이 조용한 것입니다. 날이 화창하고 좋은데 밖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가 하나도 없는 것 입니다.
그러자 왕이 묻습니다.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소?’
수행원이 대답합니다. ‘이 동네는 청교도들이 사는 마을이라서 그렇습니다’

밖에서 공을 차며 노는 아이가 한명도 없던 그날은 무슨 요일이었을까요?
맞습니다. 주일 아침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청교도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주일을 지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임스 1세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며 청교도들을 탄압하기 위해 ‘Book of Sports'라는 칙령을 발표합니다.
이 칙령의 요지가 뭐냐면 ‘일요일에 놀라’라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공도 차고, 활도 쏘고, 춤도 추라는 내용이 칙령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왕이 백성들에게 ‘놀고 즐기라’는 칙령을 내린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은 ‘청교도들’이 당시 어떻게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미국은 바로 그런 믿음의 선조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철저하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삶으로 그 믿음을 증명해 내려했던 선조들이 세운 나라라는 것입니다.
콜롬버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이민자들이 몰려와 세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청교도들의 믿음위에 세워진 이 땅의 교회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늘날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종교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종교인 것 같습니까?
맞습니다. 이슬람입니다.
이들은 하루 5번의 기도 시간을 철저히 지킵니다. 오전 5시 오후 1시, 3시, 6시, 7시
이 사진의 배경은 중동이 아닙니다.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거리 한복판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몇 십년만 지나면 유럽은 이슬람화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있죠!

저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들의 코란을 지킵니다.
철저하게 코란을 알라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믿음위에 세워진 이 땅은 어떻습니까?
참으로 애통하고 통탄할 일은, 더 이상 이 땅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복음위에 세워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창조 원리인 남자와 여자의 정의가 짓밟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도 죄가 아니랍니다.
돌이킬 필요도 없고, 회개도 필요 없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조차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가르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설교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버젓이 교회 지도자로 선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변했으니까 교회도 변해야 된다고. 그래야 교회가 부흥한다고.
그러나 과연 교회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버리고, 세상의 풍조를 따라간다고 해서 부흥할까요?
교회의 부흥은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해야 가능한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교회나 교단을 하나님이 부흥하게 해주실까요?

미국에서 성공회와 같은 진보적인 신학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교단의 교세는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고, 침례교나 순복음 같은 보수적인 교단의 교세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신학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의 기독교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반면에, 보수적이고 율법적인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인간의 내면에서 바라는 것은, 문명의 발전이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인간의 내적이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만큼은 종교가, 교회가 지켜달라는 요청 아닐까요!

기억하십시다.
이 땅은 순수한 기독교를 지키려고 했던 ‘청교도’(Puritan)들의 꿈과 땀과 눈물과 피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더 이상 곁길로 가지 않도록 기도하며, 우리도 이 땅의 선조들처럼 신앙의 본질,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가는 우리가 돼야 할 줄 믿습니다.

2. 필그림(Pilgrim)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1553년에 ‘피의 메리’라는 별명이 붙여진 여인이 왕위에 오릅니다.

한 기록에 의하면 이 때 화형된 기독교인이 3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엘리자베스 1세 라는 여왕이 1558년에 왕위에 오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은 중립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영국 국교회’ 신봉자였습니다.
이에 그녀는 ‘청교도’을 탄압하기 위해 ‘반청교도령’(Act Againist the Puritans)이라는 정책을 폅니다.
이 법은 국교회에 참석하지 않거나 국교회의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낸다는 강력한 법이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그들의 고향인 영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넣는다는 것은, ‘나가라’는 소리죠.
그래서 이 때부터 저들에게 필그림(Pilgrim)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게 됩니다.
필그림 이라는 단어의 뜻이 뭔지 아시죠?
맞습니다. ‘순례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향한 순례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저들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네델란드 ‘라이덴’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곳에서 10여 년간 지내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네델란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금융 중심지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네델란드는 영국보다 먼저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서 전 세계의 자본을 다 끌어 모으고 있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원래 이름이 ‘뉴암스테르담’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맨하튼 이라는 섬은 원래 네델란드의 식민지였죠. 그레서 네델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을 따와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죠.
그러다가 훗날 영국이 빼앗아서 이름을 ‘뉴욕’으로 바꿉니다.

저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찾아간 네델란드는 청교도들에게 적합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왜일까요? 당시 네델란드는 국제 금융 도시, 자본의 도시, 쾌락의 도시 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정착한 ‘라이덴’이라는 도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도시였습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에 먹거리를 제공하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민자였던 청교도들은 먹고 살기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죠.

이에 청교도들은 다시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 먹습니다.
어디로 가기로 결정했을까요?
맞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메리카라는 대륙입니다. 
처음에는 두 대의 배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영국에서, 하나는 네델란드 라이덴에서,
하지만 중간에 ‘스피드웰호’라는 배가 고장나서 영국의 플리머스라는 항구에서 머물게 되는데, 배를 고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결국 이 배 ‘메이플라워호’만 대서양을 건너게 되죠.


자,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저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영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10여년 간 정착했던 네델란드 라이덴도 떠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떠나고 있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그때 그렇게 정든 고향을 떠날 때 그들이 붙잡았던 말씀이 한 구절 있다고 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누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떠나는 저들의 모습, 아니 떠나야 하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신앙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내 삶의 어떤 부분 - 습관/생각/말/행동 - 을 향해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필그림’의 후예들입니다.
필그림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 되길 소망합니다.
 
3. ‘언덕 위의 도시’
메이플러워호는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난지 65일 만에 드디어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플리머스에는 그때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메이플라워호’가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고 하죠. 


그러면 메이플러워호를 타고 이 땅으로 건너온 믿음의 선조들이 이 땅에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였을까요?

청교도 필그림 선조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5)
“산 위에 있는 동네”  다른 말로 하면, “언덕 위의 도시”

청교도 필그림이 이 땅 아메리카에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더 이상 어둠이 왕노릇하지 않는 나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땅을 환하게 비추는 나라.
더 이상 적그리스도와 같은 교황이나 그와 야합한 메리나 제임스 1세나 챨스 1와 같은 왕들이 발붙일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이 땅 미국에는 왕이 없죠. 교황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3권으로 분립한 대통령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죠.
청교도들은 이 나라가 세속적인 왕이나 교황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나라로 운영되는 새로운 땅이 되길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저들이 처음 정착한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일대를 ‘뉴잉글랜드’라고 불렀습니다.

메인, 뉴헴프셔, 버몬트, 메사추세츠,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컷.

청교도 필그림은 이 땅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는 ‘천년왕국’을 꿈꿨던 것입니다. 
이에 저들은 이 땅에 도착하자마자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죠.

인디언들을 전도했던 최초의 선교사 ‘존 엘리엇’입니다.
인디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죠.
한 기록에 의하면 ‘존 엘리엇’은 열 아홉게 마을에 기도처를 세우고, 1,100이나 되는 인디언들을 회심시켰다고 합니다.
이 땅 아메리카 대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한 ‘천년 왕국’ 되게 하기 위해 목숨 걸고 나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최초로 밟은 청교도 필그림의 발자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들이 닦아놓은 터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저들이 세우고자 했던 ‘천년 왕국’의 꿈이 설여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5)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죄의 못된 습성들에서 벗어날 때에 우리도 이 말씀처럼 이 세상의 빛된 존재로 거듭나게 될 줄 믿습니다.
청교도 필그림의 꿈꿨던 ‘천년 왕국’의 비젼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직장을 통해 계속 확장되어져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