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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오십니다(4) 뭐가 달라지나요?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8-12-24 (월) 13:15 조회 : 81
설교일 : 12월 23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이사야 11:6-9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강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 강림절에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은 시리즈 마지막 시간으로 ‘오시면 뭐가 달라지나요?’라는 주제로 은혜를 함께 나눌까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뭐가 달라질까요?

제가 오늘 이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 너무 살기 좋기에 구지 ‘예수님이 오셔도 그만 안 오셔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을 美國 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을 미국 이라고 부른답니다.
美國 vs 米國
일제 치하와 6.25를 겪은 우리 민족에게 미국은 천사와 같은 나라였죠.
일제 치하와 북한 공산주의에서 우리를 구원해준 미국은 단지 우리에게 쌀의 나라가 아니라, 그야말로 아름다운 천국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살기 좋은 천국과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보니,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추운곳에서 살 수 있고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 살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는 괴롭히는 나라도 없고, 은퇴하면 노후 보장까지 잘 되어 있습니다. 자식들도 본인들이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보니 구지 ‘천국’을 사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쉬울게 없는 거죠. 오시면 고맙고 안오시면 그만 ^^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면 지금 우리의 모습과는 상대할 수도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뭐가 달라질까요?
1. 우리의 신분이 달라진다.
베드로 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이 완성되었나요?
아니죠. 이 말씀은 2천년 전에 선포되었고 그 과정속에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완성은 언제 보게 될까요?
맞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간에 ‘예언의 성취’를 위해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라고 했죠!

이 말씀, 우리에게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주시려고 예수님은 언젠간 이 땅에 다시 오셔야 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아직 우리는 ‘왕’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죠!

그런데 여러분 그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는 원래 ‘왕’이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르시게 하자 하시고”(창 1:26)
그래서 누가 창조되었나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죠.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였습니다.
한마디로 왕이었죠. 하나님을 대신하는.

그러나 그랬던 우리의 신분은 죄가 이 땅에 들어옴으로 어떻게 되었나요?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롬 5:14)
죄를 지음으로 이제 왕이었던 우리는 누구의 지배를 받게 되었나요?
맞습니다.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망이 우리의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이렇게 탄식하죠. “오호라 곤고한 존재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한마디로 별 4개 짜리 사성장군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이후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리를 건져내러 2천년 전에 이 땅에 내려 오신 분이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맞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우리에게 왕노릇하고 있는 죄에게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죠.
이를 통해 우리를 다시 우리의 본래 자리, ‘왕’의 자리로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왕’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옆에 있는 분들에게 확인시켜 주실까요? “당신은 왕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2천년 전에 빼앗겼던 ‘왕’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완성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중에 있죠!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오시게 되면, 제일 먼저 달라지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지위가 단지 ‘선언적인 지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시각적 지위’로 바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그 때가 되면 진짜 왕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에 예수님은 ‘므나 비유’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이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요한 계시록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우리는 정말로 이 땅에서 ‘왕’이 될 줄 믿습니다.
다시 한번 선포해주실까요! “당신은 왕입니다”

2. 이 땅의 정치가 달라진다. 
오늘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정치’이야기죠.
그런데 가족이 함께 모이는 연말 시즌에 부모인 우리가 꼭 피해야 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맞습니다. 정치 이야기입니다.
세대간의 생각이 명확히 갈리기 때문에 제아무리 부모 자식간이라고 해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트럼프가 어떻고, 민주당이 어떻고, 공화당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 나누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자식들이 밥 먹다가 손주 데리고 집에 가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장 인도자 교육 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공과 끝나고 밥 먹을 때, 정치 얘기하지 말라고. 지난번 구역회에 통역하러 오신 목사님하고 같이 식사하는데,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이 교회도 정치 얘기하네!’
물론 정치나 경제 이야기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우리가 나눌 더 깊은 대화의 주제는,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전도 되었는지, 그리고 속회 나오지 않는 식구들 속회 나오게 해야 하는지... 이런 발전적이고 건강하고 복음적인 얘기 아닐까요!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당시 유대인들은 여러 정당이 있었습니다. 보주적인 바리새당, 진보적인 열심당, 현실주의자인 헤롯당과 사두개당, 근본주의적인 엣세네당.
이렇게 크게 5개 파로 갈라져 있었고, 추구하는 정치의 방향이 다 달랐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그 다섯 개 당 중에 어느 당에 소속해 계셨을까요?
이것이 바로 그 답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저는 우리 기독교인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인가요? 이 세상에는 완벽한 당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당원도 아니고 공화당원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당일까요?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당원’입니다.
함께 고백하실까요! ‘나는 예수당입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투표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죠. 두 당을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당을 찍어야죠.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말씀의 요지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당은 ‘예수당’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인가요?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입에서 나오는 대화가 예수님을 선전하고, 예수님을 홍보해서, 예수당에 가입하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 내 입에서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네이퍼빌 감리교회 성도님들이 그렇게 예수당의 맨 선봉에 서는 교우들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정권을 잡게 되면 달라지게 되는 두 번째 모습입니다.
그러면 예수당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정권을 쥐어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여러분, 이런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얼굴색이 검은자나 하얀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는 ‘예수당’의 공약들이 나와 있습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 4:3)
여러분, 이런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가슴 뛰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정치 다 뒤집어 엎고, 이런 공약을 내건 우리 ‘예수당’이 세상을 통치할 그날이 속히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잘못된 정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나요!
어린 아이들이 무슨 잘못 있다고,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굶어죽어나가야 합니까!
어린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수천킬로미터를 걸어서 미국 국경을 향해 걸어야 하고, 그 핏덩어리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우리 북한 동포들은 무엇 때문에 7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야 하나요!
다 무엇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정치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이 땅의 정치가 바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꿈꾸었던 그 세상, ‘골짜기는 평지가 되고 산은 낮아지는 그 꿈,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부모의 후손과 그 노예의 주인이 낳은 후손이 한 식탁에 둘러 앉아 행제애를 나누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그 꿈, 나의 네명의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그 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런 꿈들이 더이상 말이 이니라, 단지 공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지는 그 나라에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는, 정치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세속적인 통치와는 다릅니다. βαδίληία(바실레이아)
예수님이 약속하신 ‘왕노릇’은, 남 위에 군림하는 왕노릇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열 고을을 통치할 권세’도 오늘날 정치인들이 국민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런 권세가 아닙니다.
혹 그런식으로 천국을 생각하셨다면 속히 그런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개념들을 버리십시오.
그런 세상의 가치들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그곳은 천국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런식의 통치를 추구하는 곳이 천국이라면 저는 그런 천국 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통치는, 하늘 보좌 버리고 낮고 낮은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통치입니다.
무릎을 꿇어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발을 씻기는 통치입니다.
권력으로 누르는 빼앗는 자가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나누어주고 섬기는 자가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 통치, 그런 나라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의 그 나라가, 주님의 그 통치가 속히 이 땅위에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3. 지구의 환경이 달라진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의 기후와 환경이 노아의 홍수 이전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는 이렇게 됩니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사 65:20)
요즘 젊어지려고 얼마나 노력들 합니까!
얼굴에 별 짓을 다하고 별 것을 다 먹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우리 한국인이었다면 인류가 죄짓지 않았을 거라는 농담도 있죠!
우리 한국 사람들은 몸에 좋은 것은 뭐든 다 먹으니까. ^^

100세가 젊은이랍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게 될까요?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사 65:22)
나무의 수명이 천년이 넘어가는 나무도 있죠. 그래서 창세기 6장, 노아의 홍수 이전에 나오는 조상들의 나이를 보면,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고, 가장 오래산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죠.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든 100살 살아보려고 바둥바둥 애쓰는데, 9백살이라니요!
이에 사도 바울은 우리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1)
우리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피조물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인가요? 피조물도 괴로우니까요.
원래 지구의 기후는 사람이 다 벗고 다녀도 될 만큼 온화했고, 땅에는  엉겅퀴나 가시 같은 잡풀조차 없었죠.
그러나 이렇게 죄가 이 땅에 들어옴으로, 왕인 인간이 잘못 운전하였기에 그 안에 타고 있던 모든 피조물 또한 우리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8)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면, 다시 노아의 홍수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라는 생명을 먹어야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을 것이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사 11:7,9)

오늘날 우리는 유한한 자원 때문에 치고 박고 싸우며 사는데, 그 날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초에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에덴동산처럼 모든 것이 풍족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 땀흘려가면서 억지로 노동할 이유가 없어지죠!
그곳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동물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며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창의적인 일에 시간을 써가며 인간으로 지음받은 최고의 목적을 이루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두뇌가 지금 그 능력을 채 10%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때가 오면 아담처럼 100%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10%만 사용하고도 이렇게 놀라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100%를 다 사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말 그대로 유토피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런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베드로 변화산에서 잠깐동안 변화된 예수님을 보고, ‘주님 내가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을까요!
그때가 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썩지 않는 영화된 몸을 입고, 3차원의 세계를 뛰어 넘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4차원의 세계를 활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런 세상이 이 땅에 펼쳐집니다.

바라기는 우리 네이퍼빌 감리교회 성도님들은 지금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마시고,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늘 나라를 바라보시면서, 주님 오시는 그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아름다운 천년왕국을 유업으로 받는 형제자매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