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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오복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9-01-14 (월) 05:44 조회 : 111
설교일 : 1월 13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잠 3:1-10



잠언오복(箴言五福)


잠언 3장 1-10절


오늘은 2019년 두 번째 주일로 우리 교회는 매년 ‘청지기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어떤 말씀을 나눌까 묵상하다가, 지금 새벽에 잠언 말씀을 한 장씩 묵상해가고 있는데, 3장에 나온 말씀이 오늘 청지기 주일에 나누는게 좋겠다 싶어서 이 본문은 따로 빼 놓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확장해가는 청지기로써, 2019년도에는 우리 모든 교우들이 꼭 받았으면 하는 5가지 복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잠언 오복’이라 정해 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도 다섯 가지 복이 있죠.
우리 동양에서는 어떤 것을 ‘오복’이라고 칭하나요?
서경, 홍범편에 나오는데요, 다음 다섯가지가 그것입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오래 넉넉하고 건강하게 덕을 쌓으며 살다가 고통없이 하늘나라 가는 것.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런 오복만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확장시켜가는 청지기에는 또다른 5가지의 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1. 평강(平康)
본문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절)
우리는 이 땅에서 장수의 축복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릴 뿐만 아니라 거기에 뭐가 더해집니까?
맞습니다. ‘평강’이라는 단어가 더해집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래 살긴 사는데 날마다 싸우면서 살면 그 삶이 행복할까요?!
날마다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산다면 오래 사는 것이 의미 있을까요?!
우리 삶에 있어서 평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자식들때문에 바람잘날 없었던 솔로몬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오죽하면 이런말을 남겼을까요!
바라기는 올 한해가 작년보다 더 평강이 넘치는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가정마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자식들 사이에 평강이 가득한 한해 되길 소망합니다.
직장과 일터에서도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 속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속회와 교회에서도 올 한해가 작년보다 더 사이좋게 지내는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삶에 ‘평강’이 가득할 수 있을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길 때 우리 삶에 쉼이 찾아오고 평강이 찾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올 한해가 그런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다’는 얘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꼼꼼히 읽어 봐야 합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쉬게 해주시겠다면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죠!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오늘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이 짐을 사자성어로 ‘희로애락’이라 하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이 땅에 지셨던 멍에를 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벼워진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셨던 멍에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십자가라는 멍에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다시 말해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 자기의 사명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이 세상에서 평강을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거죠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사명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해, 물질을 위해,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삽니다.
내 십자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 다른 사람의 논리, 다른 사람이 지워준 십자가를 짊어지고 삽니다.
그러니까 평강이 있을 리 없죠!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 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 말씀 속에 ‘자기’가 두 번 나오는데, 앞에서의 ‘자기’는 그런 자기입니다. 욕심이라는 자기, ‘자기 의’라는 자기,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이 덧씌운 자기, 타인에 의해 강요한 자기.
뒤에 나오는 자기는, 그런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목적과 사명이라는 자기, 타인에 의해 덧씌워진 과제가 아니라 내 과제, 내 사명이라는 자기입니다.
그렇게 내 사명 찾아갈 때, 내 삶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사명 쫓아 살면 모든 것이 보장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 내 자리 지키며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사하며 사는 것이 무겁고 어려운 짐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평강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30)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그러면 ‘내 십자가’ 짊어지고 사명 쫓아 살아가는 삶이 왜 쉽고 가벼울까요?

이스라엘의 멍에는 소 한 마리가 끄는 멍에가 아니랍니다. 땅이 척박하기에 소 두 마리가 끌어야 한답니다.
우리 크리스찬의 삶에 ‘평강’이 깃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옆에는 누가 계실까요? 맞습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가벼울 수 밖에요! 
“주님이 함께 하시니 가볍습니다” “십자가 지면 가벼워집니다”

2. 존귀(尊貴)
본문 3절과 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게 하지 말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장:3,4)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게 마땅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니까요.
대통령의 아들이나 딸만 되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트럼프 대통령 딸 보십시오. 일국의 대통령의 딸도 그런 대우를 받는데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과 하늘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빨리 깨우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비결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는 거죠. 
요즘 왜 교회마다 분란이 일어나나요?
세상의 개념을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왜 분란이 일어나나요?
이 또한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가부장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아내도 남편을 귀히 여기면 얼마나 화목하고 아름다울까요?
속회나 교회에서도 자기주장만 옳다고 억지 부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면 얼마나 부드럽고 발전적인 모임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사도 바울은 아내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올 한해 모든 아내 된 성도들은 이 말씀 순종하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남편들에게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이게 무슨 얘기인가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듯이 죽으라는 얘기죠.
올 한해 남편 된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 이렇게 죽는 한해가 돼야 할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가치관이고 세계관입니다.
세상과는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죠.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고 기독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와 가치가 증명됩니다.
이에 솔로몬은 권면합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게 하지 말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장:3,4)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게 하지 말고”

올 한해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속회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의 말과 미소와 행동 안에서 주님의 인자한 모습이 가득한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존귀함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섬기는 자가 존귀함을 받습니다” “당신은 존귀한 자입니다”

3. 인도(引導)
본문 5절과 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장 5,6절)
우리가 험난한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바라기는 올 한해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길을 따라 사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2019년이 우리에게 안전한 길 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는 권면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지식이나 내 경험을 믿고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우리의 네비게이션이 됨을 인정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요즘 어디 가실 때 전부 다 네비게이션 따라 가잖아요. 양들이 목동을 따라가듯.

그렇게 한평생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았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으로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시 23:1,2)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오신 교우 여러분, 올 한해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 받는 한 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주님 바라보고 갑시다”

4. 강건(强健)
본문 7절과 8절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 3장 7,8절)
올 한해를 우리의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강건한 한해로 살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를 경외하라고요? 맞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살면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를 경외하면 이렇게 영육간에 강건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냐 안하냐는, 주일 성수 하냐 안하냐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주일을 온전히 성수 할 수 있으려면, 주말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어제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셨다면 오늘 아침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또 어제 밤새도록 영화나 스포츠나 오락을 즐기셨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으셨을까요?
오셨더라도 아마 지금쯤 전부다 공자님 만나고 계시겠죠!
오늘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지난 밤을 어떻게 보냈느냐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장수할 수 밖에 없고 강건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자연스럽게 악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절)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니,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올 한해가 이런 한해 될 줄 믿습니다.
“강건한 한 해 되세요” “주일 성수만 잘해도 건강해집니다”

5. 풍요(豊饒)
본문 9절과 10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주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장 9,10절)
하나님께 재물과 소산의 처음 익을 열매를 드리라는 것이죠.
그러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주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우리가 물질적으로 헌신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좀 안 받으시면 안 될까요? 예배 시간에 봉헌시간을 좀 빼면 안 될까요?
그 시간만 없으면 좋겠는데...

그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나님의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가있는가?’는 ‘내 물질의 우선순위’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물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의 문제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올 한해 하나님께 ‘즐겨내심으로’ 내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는 한 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한가지만은 예외로 하신 게 있습니다. 뭘까요? 맞습니다. 십일조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혹 지금까지 신앙생활하시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한번도 드려보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올 한해, 이번 한 해만이라도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럴 때,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며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는 말라기 3장의 약속의 말씀이 한 알도 남김없이 다 우리 삶속에서 이뤄지는 체험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을 맞아 함께 나눈 잠언 오복의 축복이, 2019년도에 우리 네이퍼빌 청지기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