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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예수는 역사다(2) 정말 부활하셨는가?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9-04-22 (월) 04:26 조회 : 27
설교일 : 4월 21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마태 28장 1-6절

예수는 역사다(2)
예수님은 정말 부활했는가?
 


마태 28장 1-6절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예수는 역사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유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한낱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취급하니까요.
예수님은 과연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예수님은 과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까요?
맞다면, 무엇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1. 첫 번째 증인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복음서에는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목격자들이 누구인지가 나와 있는데, 마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마 28:1)
마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막 16:1)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네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
요한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 20:1)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기록을 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목격한 목격자는 누구인가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맞습니다. 여자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예수님이 부활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목격자가 여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소개한 책입니다. 이 책을 쓴 ‘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최연소로 ‘시카고 트리뷴지’에 입사해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편집장’까지 오른 인물인데,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죠!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내를 기독교에서 구출해 내기 위해 기독교의 교리들을 깨부술 궁리를 합니다. 장장 2년 동안 기독교의 허구를 밝히기 위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책들과 학자들의 이론으로 무장한 뒤, 신학교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맞장 토론을 벌입니다.

영화로도 나와 있으니까요, 원하시는 분들은 얘기하십시오.
박승선 집사님에게 얘기하면 보여주실 겁니다. ^^
이번 두 편의 설교는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과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가며 준비했습니다.

열 두 번째 챕터에서, ‘리스트로벨’은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를 찾아갑니다. 윌리엄 크레그 박사는 평생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만 연구한 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리스트로벨’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론과 ‘예수 세미나’의 이론의 무장한채 찾아가죠.
‘예수 세미나’라는 단체에서는 예수님이 무덤에 안치되지 않고 그냥 방치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방치된 채 새의 밥이 되거나 들개들의 밥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산헤드린 공회 의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무덤을 내어주죠!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맞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고 성경에 분명하게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43)

윌리엄 크레그 박사는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 요구하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유대 공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반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인가요?
만약 훗날 기독교가 예수님의 부활을 그럴듯하게 꾸며 낼 생각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선택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한 사람들이 누구였을까요?
맞습니다. 유대인들, 그것도 산헤드린 공회의원들입니다. 왜인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결정 난 곳이 산헤드린 공회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공회의원 중 한 사람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둔다?
그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여러분이라면 내 스승을 죽인 원수에게 스승이나 부모님의 시신을 맡기겠습니까!

그렇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안장되고 3일이 지난 오늘 아침, 부활 하시는데, 다시 앞에서 본 말씀으로 돌아가 보죠.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마 28:1)
성경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준 첫 번째 인물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목격자가 여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앞에서 본 ‘아리마대 요셉’의 논리와 같습니다.
‘윌리엄 크레그 박사’는 ‘리스트로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인데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면, 절대로 여인들이 등장해서는 안된다”
왜인지 아십니까?
죄송합니다. 2천년 전에는 그랬다는 얘기니까 이해하고 들으십시오.
월리엄 크레그 박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의 증언은 무익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자들은 유대 법정에서 법적인 증인들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아이들과 여인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았죠! 아니 2천년 전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100년 전으로만 돌아가 보십시오.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호적에 이름도 올릴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 미국에서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지가 10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인데, 거짓을 덮고 그럴싸하게 만들려면 이렇게 기록해 놓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믿겠냐’는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여인들의 말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인가요?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 여인들은 성경이 기록된 당시에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으니까요.

바라기는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든, 여기저기에서 무슨 말이 들리든 흔들리지 마시고 부활신앙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부활 이후 제자들의 삶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주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 말씀드릴 때 이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 세미나에 속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게 아니라 잠시 기절했다가 살아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끝에 납덩이가 달린 채칙을 맞고, 손과 발은 못 박히고, 옆구리는 창까지 찔린 상태에서 사람이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렇게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났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등짝에는 살점이 떨어져 너덜 거리고, 손과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고, 발은 절둑거리고, 어깨는 탈골 되어서 좀비와 같은 모습이었을 텐데, 이런 몰골로 나타난 사람을 보고 부활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요?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쳤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죽었다 깨어난 것이 아니라, 온전한 모습으로, 아니 온전을 넘어 영화된 육신으로 부활하시죠.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있게 자신을 제자들에게 내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
그리고 실제로 제자들은 만져 보죠.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못 믿겠다고 했던 도마도 만져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기에 저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수 있었겠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제자들의 행적을 보면, 저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모두 다 순교하게 되는데, 첫 번째 순교자인 야고보 사도는 어떻게 순교했나요?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칼로 목베임을 당합니다.

베드로와는 형제 사이였고 베드로를 전도했던 ‘안드레’, 라는 제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러시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렇게 X 자 십자가에 달려 순교당하게 됩니다.

빌립은 어떻게 되었나요?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방까지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이렇게 큰 십자가에 달려 순교당하게 됩니다.

바돌로매는 어떻게 되었나요?


오늘날 아르메니아 지방까지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살갗이 벗겨지는 고문을 당하면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태는 어떻게 되었나요?

에디오피아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이렇게 도끼에 맞아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어떻게 되었나요?

열심당원이었던 그는 시리아에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잠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유대인에게 잡혀 성전에 끌려간 뒤 몽둥이에 맞아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다대오는 어떻게 되었나요?

다대오는 페르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이렇게 ‘다대오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또 다른 열심당원이었던 ‘시몬’은 어떻게 되었나요?

시몬의 초상화나 동상에는 항상 ‘톱’이 같이 따라 다닙니다. 왜일까요?
페르시아에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톱’으로 목이 잘린채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어떻게 되었나요?


인도까지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이렇게 창에 찔려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교회가 세워졌고, 이렇게 교회 한 구석에 도마의 순교상이 세워져 있다죠.

그리고 마지막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가 잘 알 듯이, 네로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을 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죠.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벌어졌던 일입니다.
하나같이 다 순교당합니다. 밧모섬에 갇힌 사도 요한만 빼고,
예수님이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겼기에, 그는 살아남아야 했죠.

이런 제자들의 삶, 부활 이후 제자들의 삶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인가요?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 세미나’에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야기 하듯, 한낱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다면, 그렇게 지어낸 소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니까요.
부활을 보지도 않고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무지막지한 고문을 견뎌낼 수도, 필요도 없을 것이니까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보여준 삶의 궤적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예수님의 부활은 진짜였음을 우리에게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이 오늘 우리 귓가에도 들려지고 보여지길 소망합니다. 

3. 회의론자들의 회심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리스트로벨‘은 계속해서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 거짓인가?를 파헤쳐 갑니다.
그러던중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모어랜드’ 박사를 만나는데, 모이랜드가 제시하고 있는 강력한 부활의 증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하고 있던 회의론자들이 부활 이후에 회심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두 사람을 예로 들고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입니다.

먼저 ‘야고보’부터 보시죠. 야고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 13:55)
야고보는 예수님의 바로 아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면 야고보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자기 형이 메시야라는 것을 믿었을까요? 믿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3-5)
그럴싸한 말로 형을 고향에서 내쫓고 있죠!

이렇게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활동하실 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경험합니다. 가족들 전도하게 제일 힘들다는 것을!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도 가족들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혹 여러분 가족 중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모르는 분이 있다면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기회가 올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랬던 야고보가 언제 바뀌었을까요? 바로 이것을 경험한 뒤입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고전 15:4-7)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회심한 것입니다 
이에 훗날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한 야고보 사도를 대신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지킵니다.
그러면서 쓴 책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고보서’죠.

이러한 변화, 예수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회심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회의론자가 회심한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죠. 그가 사울이었을 때 그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아래 두니라”(행 7:58)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그 옆에 있었던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시 했죠.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 8:1)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데 맛들인 사울은 이제 그 일이 앞잡이가 됩니다.
여러분, 안좋은 일에는 앞잡이가 되지 마십시오. 나중에 후회합니다.
한 말씀 더 보죠!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 9:1-2)
여러분, 이랬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래서 훗날 회심한 뒤에 이렇게 고백하죠.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렇게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래서 초대교회는 처음에는 바울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익히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울이...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 9:20,21)

이렇게 사울이 바울로 바뀐 회심,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된 이방인의 전도와 교회의 확장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부활이 아니고 어떻게 회심 이후의 바울을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1차,2차,3차 여행)

마지막은 로마로 가서 목베임을 당함으로 순교하죠.
그것도 한 두 명도 아닌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야고보와 바울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순교한 사람이 2천년 동안 6천만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이야기가 소설이라구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
확실히 믿기는 우리가 불쌍한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인줄 믿습니다. 왜인가요?
부활은 실제이고, 예수는 역사이고 우리는 그 역사를 믿고 있는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부활절을 맞아 사망 권세 이기신 부활의 소식이 우리 귓가와 마음에도 들려지고, 더욱 굳건한 믿음위에 서는 우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