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말씀 > 설교말씀


총 게시물 274건, 최근 0 건
   

다윗의 시편(1)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9-07-05 (금) 21:47 조회 : 62
설교일 : 6월 30일
설교자 : 박관우 목사
본문말씀 : 시편 8편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편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을 꼽으라면 단연 ‘다윗’일 것입니다.
그는 기원전 1,000년 경에 살았던 사람인데,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에 하나님에게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훗날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요?
물론 그도 우리처럼 실수 많은 한 인간이었음을 그의 일대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이렇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도 다윗의 혈통을 통해 왔고요.
우리와 같이 짧은 인생을 살다간 다윗, 그러나 훗날 하나님 앞에서 이런 평가를 받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 앞으로 몇 주간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아름다운 세상?
1절, 9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오늘 읽은 시편 8편은 총 9절로 되어 있는데, 처음 1절과 마지막 9절이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로 끝맺고 있죠!
그러나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운가요? 다윗의 삶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나요? 다윗은 꽃길만 걸었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중에 왕을 삼기 위해 방문했을 때,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죠. 막내이기에 철저하게 무시됐던 것입니다.
골리앗을 쓰러트린 뒤,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긴 했지만, 그는 사울왕에 미움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줬던 딸도 다시 빼앗아 버리고 그의 계급도 강등시켜 버립니다. 심지어 벽에 박으려고 창을 두 번씩이나 던졌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블레셋으로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습니까! 그는 살기 위해 미친척을 해야 했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벽을 긁으면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야했죠!
그런데 세상이 아름답다고요?

8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시편 8편이 다윗의 시편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부터 살펴 봐야 합니다.
* 3편 -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지은 시
1절 :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 4편 :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지은 시
2절 :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 5편 -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지은 시
1절 :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 6편 -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지은 시
2절 :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리니 나를 고치소서

* 7편 - 모함을 받고 있을 때 지은 시
1절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여러분, 이것이 지금 다윗의 현재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아름답다고요?
8장 바로 앞에 있는 모든 시들은 그리 편한 시가 아닙니다. 그의 입에서 탄식이 나올 때 지은 시죠. 그래서 이런 시들을 ‘탄식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시편 8편 다음부터 나오는 시는 어떤 시들일까요?
그의 형편이 좀 나아졌을까요?
9편과 10편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시이고, 11장부터 보죠.

* 11편 - 사울에게 쫓길 때 지은 시
2절 :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 12편 - 사울 정권 말기에 지은 시
4절 :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 13편 - 극심한 고난 중에 지은 시
1절 :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 14편 - 다윗이 그의 믿음이 조롱받고 있을 때 지은 시
1절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여러분, 이것이 다윗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8편 앞뒤로 이런 시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인생이 아름답다고요?
다윗의 인생이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세상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그의 긍정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실족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2. 하늘을 바라보자!
본문 3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 8편 3절 )
지금 다윗은 어디를 쳐다보고 있나요? 맞습니다. 하늘입니다.
실족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동서남북 다 막혀 있지만, 하늘만큼은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다윗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오른쪽도 막히고 왼쪽도 막혀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을 사자성어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 하더군요.
들어 보셨나요? 사면초가
이 사자성어가 어떻게 유래되었는가를 검색해 봤는데, 재미있더군요.


춘추전국시대 ‘항우’가 초나라를 세우고,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죠. 둘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싸우고 있을 때, 한나라의 ‘유방’이 심리전을 펼칩니다. 포로로 잡아온 ‘초나라’ 병사들에게 밤마다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것입니다.(조조-위, 유비-촉한, 진-시황제가 통일)
그 노래를 듣고 있던 ‘항우’는 밤마다 포로로 잡혀간 자신의 병사들의 서글픈 노래를 들으면서 점점 사기를 잃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항우는 그 전투에서 패하고 말죠.
이때 나온 사자 성어가 ‘사면초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동양의 체스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장기’입니다.


‘장기’ 좋아하시나요?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이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지금 다윗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앞에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오른쪽도 막히고 왼쪽도 막혀 있습니다.
이제 다윗은 끝난 것일까요?

재미있는 것은, 항우도 다윗도 지금 ‘사면초가’에 갇힌 상황인데, 그렇게 막혀 있을 때, 둘 다 시를 지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항우’가 지은 시가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천하를 덮을 만하건만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항우의 애마)도 나아가지 않네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우희여(항우의 연인), 우희여!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의 유명한 경극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패왕별희’입니다.

패배한 왕 ‘항우’가 그의 애첩 ‘우희’와 이별하며 부른 사별곡이죠!
결국 항우는 사면초가 앞에서 애첩 우희와 함께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이 노래를 부르다가 우희도 스스로 자결하고 항우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은 어떠했나요?
다윗 또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쳐해 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봤듯이,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궁을 버리고 머리를 풀어 헤친채 도망쳐야 했던 때도 있었고, 살기 위해서는 적국인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 침을 흘리며 미친척을 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패왕별희’를 부르다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상황에 이 노래를 부릅니다. 바로 오늘 시편 8편.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 8편 3절 )
이것이 동양의 영웅 ‘항우’와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의 차입입니다.
다윗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맞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 우리 중 ‘사면 초가’의 상황에 처한 형제자매들이 계십니까?
패왕별희가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시며 일어서시길 소망합니다.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더라도 하늘만큼은 뚫려 있음을 믿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두가 다 나를 버려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만큼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심을 믿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늘을 보니 내가 보이고, 내가 보이니 세상이 보인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들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을 때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골리앗을 무너트렸던 영웅이, 이제는 살기 위해서 침을 흘리며 미친척하고 있어야 했던 그에게 무슨 자존감이 남아 있었겠습니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이제 내가 달라보이기 시작합니다.

4절 :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돌보시나이까
5절 :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절 :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7절 :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절 :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신앙이 주는 유익입니다.
하늘 바라보며 살면, 우리 안에 있는 자존감이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임을 다시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물과 피를 흘리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소나 양이나 들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라 고귀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임을 보여주시고 확증하시기 위해 그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를 높여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우리 머리 위에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이에 우리는 이제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제는 나만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존재들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또한/ 온 땅이 그렇게 보인다는 고백입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자존감도 무너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죄인인건 맞지만 하나님은 나를 더 이상 죄인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의인’으로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죄많은 인생이 의인으로 불려졌기에 나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의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로 여기며 삽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기독교의 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우리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옆에 있는 형제자매를, 같이 사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와 부모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오늘 시편 8편에서 다윗이 보고 있는 그 눈이 저와 여러분의 눈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패왕별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편 8편의 찬양으로 저 하늘까지 이어져가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