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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9월 속회공과 - 사람이 주는 사랑의 한계

글쓴이 : 네이퍼빌교 날짜 : 2018-09-01 (토) 23:05 조회 : 255
18년_9월_-_사람이_주는_사랑의_한계.doc (335.8K), Down : 4, 2018-09-01 23:05:32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동안 가장감사한 일은?

2) 누군가에게편애 당하거나누군가를편애보신 있나요?

* 성경 - 25:27,28

* 말씀나눔 : 사람이 주는사랑의 한계

 

성경에 나오는 가정 중 가장 불행한 가정을 꼽으라면 단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정이 1,2등을 다툴 것입니다.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 사이였지만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웠고, 한평생을 서로 원수로 지내다가, 죽기 직전에야 어정쩡한 화해를 이룬 야곱과 에서.

화해하는 그 순간에도 먼저 뇌물과 처자식을 보낸 뒤에 자신은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행렬의 맨 뒤에서 따라왔던 야곱.

형과 부둥켜안고 울면서 화해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형이 무서워서 밤을 함께 보내며 못 다한 얘기나 나누자던 형을 끝까지 의심하며 매정하게 뿌리쳤던 야곱.

이 둘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을 까요? 

 

1. 편애상처를 낳는다.

오늘 본문 28절에서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관계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중요한 단서 한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5:28).

둘 다 똑같은 자식인데, 이렇게 마음 주는 것이 달랐습니다. 우리도 무남독녀가 아닌 이상, 자라면서 형제나 자매들 가운데 유독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형제나 자매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자라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었는데, 유독 여동생만 챙기시는 것입니다. 맛 있는것 있어도 여동생, 용돈을 줘도 내가 오빤데도 어린 동생하고 똑같이 주고, 옷을 사도 동생 것만 사주고 나는 사촌형들 옷 얻어 입히고...

물론 이해가 되긴 했는데, 그때는 말은 안했지만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여동생과 제가5살 차이나 났으니까 부모 입장에서 보면 늦둥이였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 속원들 가운데도 늦둥이로 자랐거나 늦둥이를 두신 분들도 계실 텐데, 늦둥이는 으레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훗날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절대로 편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하나 낳고 아들도 하나 낳았습니다. 물론 제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여러분, 제가 딸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까? 아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까? , 맞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둘이 같은 통학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같은 차에서 내려도 왜 딸만 보이고 아들은 눈에 안들어오는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 아내는 아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들도 엄마만 좋아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딸은 아빠를 좋아하고,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바뀐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성 정체성이 바로 서고.

오늘 본문도 이런 이야기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편애’하게 되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쪽에서는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편애하지 말아야죠.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 때문입니다.

 

2. 자기중심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스위스의 아동 심리학자 ‘피아제’가 처음 사용한 단어인데, 자기중심성은 아동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되어서도 여전히 우리는 자기중심성 안에 갇혀 삽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왜 형 에서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인 리브가는 동생인 야곱을 더 사랑했던 것일까요? 본문 28절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5:28).

이삭은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나이 들어서까지 고기를 찾고 있는 걸 보면, 이삭은 정말로 육식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를 누가 잡아옵니까? 맞습니다. 에서입니다. 그러니 눈이 자꾸 에서에게만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야곱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일을 야곱이 알아서 척척 도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삭은 에서에게 마음이 가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마음이 기울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도 어느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용납해줄 수 있는 범위와 한계가 있습니다. 그 범위와 한계를 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삭이 에서를 더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더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각자의 자유이고 본성이니까요. 

그러나 리브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눈먼 남편을 속여 장자권을 강탈하라고 야곱을 부추긴 이도 리브가였고, 두려워서 싫다고 거절했던 야곱을 막아선 이도 리브가였고, 야곱을 변장시켜준 이도 리브가였습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 합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27:13).

이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그렇게 장자권을 얻은 야곱은 행복했나요? 아니죠.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죽도록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죄값을 그의 인생 말년에 그대로 되받게 됩니다. 훗날 야곱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들들이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속이지 않습니까!

에서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날 이후 어머니와 동생 야곱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는 더 삐뚤어져 갔습니다.

남편 이삭은 풍요로워야 할 인생 말년을 완전히 망치게 됩니다. 큰아들에게 축복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아내와 둘째 아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대한 모멸감으로 그의 인생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조정했던 리브가는 행복했을까요? 하루하루를 가시 방석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에서가 야곱을 죽일려고 맘 먹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을 두 눈으로 목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날 이후로 리브가는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삭이 리브가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속인 아내를 용서할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기에 어느 정도 편애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가능한 야곱과 에서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3.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으로는 가능하시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고하니,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안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자녀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모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서운함이나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가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덜 받으며 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나에게 상처를 준 행위가 악한 의도를 품지 않았다면, ‘그것이 그 사람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호의일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릴적에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훗날 출세해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자기 자식에게는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호강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부모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받는 자녀들은 그 최선이 최선으로 다가 오지 않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 모자란 부분만 보입니다. 왜입니까? 제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부모 또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는 밑빠진 독(항아리) 같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부분을 이해하고,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과거의 서운함이나 상처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 부모님들이 꼭 기억해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 혹 서운함을 뛰어넘게 하려면, 먼저 믿는 부모된 우리는 자녀들에게 육신의 사랑을 넘어 영적인 부모님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온전한 치유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이 말씀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쉽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면 세상에서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이에 대한 답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완벽을 기했다 해도 편애할 수 밖에 없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속원 여러분. 혹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가 있습니까?

혹 여러분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편애로 인해 아직도 마음속에 서운함이 남아 있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래 서십시오. 사자는 싸우다가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깊은 동굴이 아니라 동굴 밖, 태양 아래로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 여러분의 상처를 내 보이십시오. 그러면 치료의 광선이 여러분의 아픔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치유하소서.

2.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속원들을 도와주소서.(중보기도)

3. 전도의 문을 열어 주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속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 속회헌금 - 찬송________ 

* 헌금기도 - 인도자

* 광고 - 속장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