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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10월 속회공과 - 자유(1) 분노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8-10-06 (토) 23:39 조회 : 153
2018년_10월_속회공과.doc (434.7K), Down : 3, 2018-10-06 23:45:19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일이 있었다면?

* 성경 - 4: 26-27

* 말씀나눔 : ‘분노’로부터 자유(2015 2 2일 주일설교)

 

요즘 한국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는 말 중에 ‘분노조절장애’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분노조절장애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충동적인 분노조절 장애’와 ‘습관적인 분노조절 장애’가 그것입니다. ‘충동적인 분노조절 장애’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어떤 일이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때 그 감정을 제어(control)하지 못하고 극한 형태로 표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를 ‘욱했다’, ‘뚜껑이 열렸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습관적인 분노조절 장애’는 그렇게 ‘욱’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경우인데, ‘충동적인 분노조절 장애’가 습관화되어 인이 박힌 상태를 말합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끔찍한 기사들을 거의 매일 접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분노’라는 감정을 제어 할 수 있을까요?

 

1. 떼어 내거나 떨어져 나오라

‘분노’라는 감정을 잘 다스리려면 먼저 감정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감정’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수그러들거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웃습니다. 그러나 어제 나를 웃게 했던 그 일 때문에 오늘까지 계속해서 웃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없죠. 어제 터진 웃음보가 멈추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지 모릅니다. ^^ 슬픔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도 언젠가는 그칩니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emotion’인데 이 단어는 라틴어 ‘movere(무웨레)에서 유래됐고 ‘movere(무웨레)라는 단어는 ‘움직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감정은 한곳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분노’라는 감정에 대입(代入)해 보면, ‘분노’라는 감정도 언제가는 사그라들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안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는 얼른 그 ‘분노’를 떼어내거나, 아니면  그 분노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불이 옷에 붙으면 그 불을 털어 내거나, 털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얼른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왜인가요? ‘분노’라는 불꽃은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 태워버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양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자 가인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는 곧장 그 ‘분노’를 떼어내던가, 떨어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죽이지도,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안에 ‘분노’라는 감정이 발생할 때, 일단 그 ‘분노’라는 감정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분노’라는 것을 ‘객체화’(客體化)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가 나를 태워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이 ‘분노’를 폭발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고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잘못하다간 불똥이 옆에 있는 나에게 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분노’를 컨트롤 하지 못한 사람은 그 누가 말려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말리면 더 날뛰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혼자 분을 삭일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가 보면,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후회하면서 뒷 정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고 이것 괜히 집어 던졌네’이 아까운 걸...  다 돈인데...  O My Money!

 

2. 어디서 왔는지 분별하라.

그렇게 분노를 ‘객체화’시킨 뒤에 해야 하는 두 번째 할 일은, 그 분노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분별해보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뭔가로 부터,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지, 어떤 사람이 내 인격을 무시했던지... 여하튼 어떤 압력이 나에게 주어졌기에 내 감정이 나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분노’라는 보호막을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의 원인은 둘 중 하나인데, 지금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분노’의 원인이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서 기인한 문제일 수도 있고, 타인에게서 기인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셀폰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내 준비가 부족해서 내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급한 메시지가 왔거나, 학교에 간 아이에게 사고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이렇게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분노’가 어디에서,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를 분별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로부터 나 자신과 옆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먼저 분노의 원인이 타인에게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지금 내 안에서 분이 치밀어 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나를 화나게 한 그 일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기적이고, 이기적인 수준을 넘어서 악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 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분명한 경고를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무례하게 나올게 뻔하니까요.

혹시 우리 가운데 얘기하는 것이 두려운 분이 계시나요? 그렇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내 속만 탈 뿐입니다. 더 나아가 말하지 않으면 결코 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 킹’목사님이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외치지 않았다면, ‘로사 파크’여사가 ‘흑인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조항은 부당하다’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버스 뒷 칸에나 앉아야 했을 것이고, 식당에서도 한 귀퉁이에서만 식사를 해야 했을 것이고, ‘워터 파운틴’(water fountain)에서 나오는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지금 이 땅 미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개인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우리는 담대히 얘기해야 합니다. 타인의 무례함에 대해 담대히 ‘NO'를 외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나 자신과 이 사회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분노가 나 자신의 문제로 부터 발생한 분노라면 좀 더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3. 나 자신과 화해하라

앞에서 봤던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가인은 잠시 ‘타임 아웃’을 불러야 했습니다. 운동 경기에서 타임 아웃이 굉장히 중요하죠. 상대방의 흐름을 끊을 수 있으니까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 안에 ‘분노’가 일고 있다면, 타임아웃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가 증폭(增幅,amplify)되어가는 흐름을 끊어야 합니다.

최근 뇌과학자들이 발견한 한가지 사실이 있는데, ‘화를 내면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방출되어 기분이 더 상하고 화가 증폭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화를 쏟아내는 것이 내 안에 있는 울분을 해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분노의 불길만 더욱 부채질 하더라는 거죠. 화를 내면 시원해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만 올라갈 뿐입니다. 그러다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수가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내 안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빨리 ‘타임 아웃’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분노가 어디에서 온 ‘분노’인지 분별해 봐야 합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지금 가인의 마음속에 끓어오르고 있는 ‘분노’는 아벨에게서 온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왜입니까? 아벨이 가인을 비난했거나 가인이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방해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그저 자신의 일만 묵묵히 했을 뿐이었습니다.

가인의 분노가 아벨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일까요?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랬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죠! 제사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니까요.

그러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 남습니다. 바로 ‘가인’ 자신입니다. 지금 가인이 그렇게 분노를 폭발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가인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내가 드린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면 내일 다시 제대로 드리면 됩니다.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바로 잡고 회개한 뒤, 다음부터 잘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갈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쳐서 죽입니다. 왜일까요? 가인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내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거지? 더구나 아벨은 내 동생인데...’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하나님을 향한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 ‘분노’를 끌어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우리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이렇게 내 안에 있는 문제만 바로 잡으면 풀릴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죽어가고 있습니까! 지금 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자신을 계속 다그치며 자신을 과거에서 놔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분노’만 쌓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놔줍시다. 더 이상 다그치지 마십시다. 이제는 하나님과 화해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과 화해하십시다. 하나님은 그렇게 속이 좁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지금까지 충분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한때 죄인중의 괴수였다가 용서받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14)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화목케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웃들과의 관계를 화목케 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 자신과 화목을 이루게 하신 주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할렐루야!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내 안에 있는 상처와 분노를 치유하소서.

2.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속원들을 도와주소서.(중보기도)

3. 전도의 문을 열어 주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속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 속회헌금 - 찬송________ 

* 헌금기도 - 인도자

* 광고- 속장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