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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11월 속회공과 - 자유(2) 비교의식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8-12-02 (일) 07:13 조회 : 61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당신의 경쟁상대(rival)는 누구인가요?

* 성경 - 25 24-30

* 말씀나눔 : ‘비교의식’으로부터 자유(2015 3 1주 주일설교)

 

몇 년전 한국 신문에 실린 내용을 잠시 소개할까합니다. 한국 입시는 수시합격과 정시합격이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이 예치해 놓은 등록금을 환불하는 바람에 대학 입학이 취소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을 잡고 보니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열 아홉 살 여학생이었고, 더욱 황당한 것은 합격이 취소된 여학생과는 3년간이나 친구로 지낸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그 여학생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떨어진 대학에 친구가 합격하자 질투심이 나서 그랬다’라고 말했답니다. 결국 그녀는 채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철창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시기심과 비교의식 때문에 인생을 망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뒀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다시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 줍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주인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왜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일까요?

이 또한 어긋난 비교의식이 만든 결과입니다. 옛말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어긋난 질투심과 비교의식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요? 비교의식에서 자유해 지려면 먼저 비교의식이 왜 나쁜지 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1. 비교의식은 열등감우월감을 낳는다.

비교의식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낳습니다. 열등감 아니면 우월감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계모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의 일상은 다른 여성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다른 여성과 비교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왜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교의식은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비교의식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유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교의식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기 때문입니다. 비교의식 속에서 살면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허무함과 후회만 남을 뿐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는게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미국에 올 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저는 미국에 간다고 하니까 다들 부러워하던데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민 오신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랍니다. 왜일까요?

70년대, 80년대에 미국 올 때는 모든 친척들과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서 미국으로 출발했는데, 그때는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잘 나간다’는 우월감에 젖어 있었는데, 3040년 지나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에 비해 별로 잘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인생에서 그리 성공한 것 같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은, 자식들 교육인데, 자식 교육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냥 한국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지금쯤 나도 저 친구쯤은 됐을텐데...’‘그때 그 집, 그 땅 안 팔고 그냥 놔뒀으면 지금쯤 수백만불 받고도 남을 텐데...’이런 후회감,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한국에 한 번 다녀온 후로는 ‘속이 상해서’ 두 번 다시 한국에 안 나가는 이민자들이 많답니다.

조금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단적인 한 예입니다. 이것이 비교의식이 주는 폐해(弊害)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에게서 받은 한 달란트나 되는 거금을-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6,000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이었는데- 땅 속에 묻어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옆에 있는 다른 종들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비교의식에서 자유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비교 의식’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찌보면 ‘비교 의식’은 인간이 뛰어 넘기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떤 ‘비교 의식’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비교 의식일까요?  

2. 비교하라. 이상적인 나 자신

사람이 비교의식에서 자유 할 수 없다면, 건강한 비교의식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비교 의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상적인 나 자신과’비교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나 자신의 모습을 꿈꿉니다. 저마다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 기대에 부응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불행을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일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자꾸 비교하면 우리에게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폐단이 찾아오고, 또 그렇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승’‘패’로 따진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런 마음, 그런 관점으로 살면, 앞에서 본 한 여학생과 같이 친구의 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도 못하고, 축하는커녕 신분을 도용해서 불합격 통보나 받게 만들죠!

오늘 본문에서 보고 있는 한 달란트 받은 종도 마찬가집니다. 옆에 있는 동료를 경쟁상대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옆에 있는 동료에게 축하의 말 한마디도 건네주지 못하죠. 그리고 종들에게 있어서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봤자 다시 다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데요! 그래봤자 다 놓고 가야 하는데요!

인생을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의식 속에서 피곤하게 살아야 합니까? 왜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느끼며 살아야 합니까? 나는 나인데! 다섯 달란트 받은 것은, 그 종과 주인의 문제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것도, 그 종과 주인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한 달란트 받은 것도, 나와 주인 사이의 일입니다. 나는 ‘나’인 것입니다.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루는 한 소년이 머리를 빗으며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긴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손자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얘야 네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그날 이후로 그 소년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답니다. 자신의 삶을 달리 보기 시작한거죠. ‘내가 왜 남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거지?

여러분, 언제 우리가 ‘비교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바로 ‘내 삶’을 살기로 결단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에 집중하며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내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이상적인 나’를 거울삼아 살아갈 때입니다. 그럴 때 건강한 진보가 우리에게 보여집니다. 그럴 때 나도 행복해지고, 타인의 행복에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려거든 여러분 안에 있는 ‘이상적인 나’와 비교하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입니다. ‘아들러’라는 학자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에서 의미는 없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러분 자신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생각해가며 계속 수정되어져가는 여러분 안에 있는 ‘이상적인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건강한 성숙과 진보로 이끌 것입니다. 이런 건강한 성숙과 진보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나를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비교 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유로울 수 없다면, 보다 건강한 비교 대상을 찾아야 하는데, 앞에서 얘기한 ‘이상적인 나 자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나’를 비롯해서 그 어떤 비교의식도 필요 없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천국’이라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본문에서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다른 종들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을 다섯 달란트나 한 달란트 받은 종과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인은 그들과 11로 관계했을 뿐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해서 다섯 달란트 받아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비교해가며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섯 달란트 받아서 다섯 달란트 남겼다고 우리를 치겨세우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남긴 것에 대해서만 칭찬해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달란트를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달란트를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달란트를 나눠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닙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모든 자식들에게 똑같은 양()으로 밥을 퍼주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왜일까요? 어머니는 자식들의 양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양()을 아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를 지으신 목적도 각각 다 다릅니다. 이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내 양을 아시니까 그만큼 주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커가면 또 거기에 맞춰서 더 큰 그릇으로 바꿔 주십니다. 내가 작다고 해서 나를 나무라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십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십니다. 나를 소중히 다루십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 가정이 천국으로 바뀔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 공동체가 점점 천국을 닮아가는 공동체가 되어갈까요? 우리의 눈이 주님을 닮아, 주님의 눈으로 나 자신과 옆에 있는 가족과 형제 자매들을 바라봐 주는 우리가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주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겠습니다. 

2.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속원들을 도와주소서.(중보기도)

3. 전도의 문을 열어 주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속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 속회헌금 - 찬송________ 

* 헌금기도 - 인도자

* 광고- 속장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