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제자훈련 > 속회공과


컨텐츠페이지.jpg
총 게시물 65건, 최근 0 건
   

19년 1월 속회공과 - 자유(4) 비판자(2)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9-01-06 (일) 09:18 조회 : 116
19년_1월_-_자유_4__비판자_2.doc (2.0M), Down : 2, 2019-01-06 09:18:56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 성경 - 9 1-4

* 말씀나눔 : ‘비판자’로부터 자유2 (2015 3 3주 주일설교)

 

오늘 공과는 지난달과 짝을 이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달에 우리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자들로부터 어떻게 자유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먼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돼지에게 내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나누었고, 그러나 무조건 거부하며 귀를 닫을게 아니라, 그 비판이 진정으로 ‘사랑’에서 나온 비판이라면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아가 에너지를 충전받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법도 배워야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자유 또한 억압하거나 속박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 또한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비판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비판자’가 되려는 ‘원죄’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숨통을 조이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1.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보석산지 목록

왼쪽 지도는 우리가 평상시에 보는 세계지도입니다. 세계는5대양 6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지도는5대양 중 어떤 바다가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까? 태평양입니다. 그러면 세계지도가 처음부터 ‘태평양’이 중심에 위치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른쪽 지도를 보십시오. 이 지도에서는 어느 대륙이 지도의 중심에 위치해 있나요? 유럽입니다. 중세까지 유럽에서 그려진 모든 지도의 중심에는 항상 유럽이 위치해 있었고, 대서양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은 둘로 쪼개져서 지도 양쪽 맨 끝에 밀려나 있죠.

그러면 언제부터 왼쪽 지도가 통용(通用)되었을까요? 바로 16세기 말 중국에 복음을 들고 간 ‘마테로 리치’때부터입니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급히 지도를 다시 그려서 황제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 지도를 보고 황제는 흐뭇해 했다고 하죠. ^^

지도 하나를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북반구가 위쪽에 그려지니까 남반구에 있는 사람들이 화가 났습니다. ‘우리는 왜 항상 너희들 아래에 위치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도가 탄생했습니다. 거꾸로 된 지도입니다. 호주와 남미가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보석산지 목록 

 

 

 

 

 

, 여기에서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세 종류의 세계 지도를 봤는데요, 어떤 지도가 맞는 지도일까요? 정답은 ‘다 맞습니다’. 태평양을 중앙에 놓고 그리든, 유럽을 중심에 놓고 그리든, 남반구가 위로 올라가게 그리든, 다 맞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왜입니까? 제아무리 정밀한 지도라도 100% 완벽한 세계 지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인가요? 지구는 지금도 계속 자전하면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오늘 나누려는 말씀의 요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맞았던 것이 오늘날에는 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비판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런 ‘사고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타인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신약의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네 개나 존재합니다. 성령님은 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쓰여진 복음서를 4개 씩이나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더욱 넓은 포용력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 품으며 살라고 그러신 것은 아닐까요! 

다름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비판자’의 삶을 벗어나는 첫 걸음입니다.

 

2. 권력 다툼까지 가지 않도록 하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한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잘 된 일이죠! 병자가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향해 꾸짖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4). 예수님이 이렇게 꾸짖고 있는 대상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기에 예수님이 이토록 저들에게 분노하셨던 것일까요? 바로 앞에 그 답이 나옵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9:3)

바로 서기관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들이었는데, 그렇게 병자가 나은 좋은 일을 보고도, 저들은 그 병자를 축하해주며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과 ‘판단’과 ‘정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이에 예수님은 저들의 그런 마음을 보시고, 그 마음을 향해서 꾸짖으시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악이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악’의 속성을 보게 되는데요, 그러면 무엇이 ‘악’일까요?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도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도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속원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 할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누구에게도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8:7). 그러면서 그 여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0).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8:11) 예수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우리 중 그 누가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다툼의 근본을 살펴보십시오. 왜 싸우게 되던가요? 다툼의 밑바탕에는 남 위에 올라서고자 하는 ‘권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서 곳곳에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두개인과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계략을 꾸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타인을 누르려는 ‘권력에 대한 욕망’때문에 그런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내 힘과 내 의견과 내 생각으로 억누르는 ‘오만한 비판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아내나 남편을 굴복시키겠다는 권력욕, 내 마음대로 자녀들을 조정하겠다는 권력욕, 내 뜻대로 조직을 장악해보겠다는 권력욕, 이런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비판자’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인간의 가장 큰 욕망 중 하나인 ‘권력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답도 주셨는데, 마태복음 5장에 있는 한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5:37). 여기에도 또 ‘악’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는데, 내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악’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콩국수를 드실 때, 설탕을 넣어 드십니까? 소금을 넣어 드십니까? 저는 설탕을 넣어 먹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국수는 소금을 넣어 먹어야 제 맛이라’고 우기면서 제 앞에 있던 설탕을 치워버린다면, 그때 제 기분이 어떨까요? 

내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주장 속에 들어 있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양념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다면 빨리 털어내야 합니다. 왜인가요?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가,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들이 바로 그 ‘권력’이라는 독소 때문에 서서히 말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견 주장하십시오.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제안하십시오. 그러나 그 이상의 선은 넘지 마십시오. ‘내 말이나 생각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속한 과제가 아닙니다. ‘나의 과제’와 ‘상대방의 과제’를 분리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자유할 수 있고, 상대방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권력욕’이 문제인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성경에 그 답이 있습니다.

3. 죽어야 산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21). 여러분, 과거의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외골수였습니다. 독불장군이었습니다. 고집불통이었습니다. 타인의 주장이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소리쳤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의 죽음을 보며 기뻐하고 열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울이 지금 뭐라 고백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여러분 왜 일까요? 그는 왜 그렇게 날마다 죽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날마다 죽지 않으면’그때 그 사울, 과거의 그 사울,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그 사울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옆에 있는 사람 힘들게 만들고, ‘나만 옳다’고 고집부리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내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며 살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날마다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있는 나는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습니까?

2014년 봄에 있었던 실화를 소개하며 오늘 공과를 마치려고 합니다. 36살이던 ‘엘리자베스 조이스’는 2013년 여름,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병원에서 암이 재발했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치료를 위해서는MRI등의 검사를 실시해야 했지만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검사 받는 것을 완강히 거부합니다. 방사선과 항암치료는 태아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기는 다음해에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그러는 동안 암은 전신으로 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출산 후 6주 뒤 딸 ‘릴리’를 안은 남편 옆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사랑하는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을까요? 그래야 우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왜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해야 했을까요? 그래야 나도 살고, 사랑하는 우리 자녀,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주안에서 하나된 형제자매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20) 이 고백이 2019, 우리 속회에서 울려 퍼지는 고백되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내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2019년 되게 하소서.

2. 상처와 아픔 속에 있는 속원들을 치유해 주소서.(중보기도)

3. 전도의 문을 열어 주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속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 속회헌금 - 찬송________ 

* 헌금기도 - 인도자

* 광고- 속장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