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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7월 속회공과 - 용서(2) 왜 그리 힘들까?

글쓴이 : 네이퍼빌KUM 날짜 : 2019-07-07 (일) 00:29 조회 : 1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 성경 - 마태복음 18:23-35

* 말씀나눔 : ‘용서’(2) “왜 그리 힘들까?”(201642주 주일설교)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수는 강물에 새겨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반대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 이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성인 남자의 하룻 품삯이었으니까, 6,000일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 한 달란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엔 한 달란트가 아니라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 나오죠! 상상이 안되는 금액을 탕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금액을 탕감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못하고 있게 아니라 안하고 있는 거죠!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는 왜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자를 탕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런 갑질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채우자!

분명 그때 그는 감동했을 것입니다. 빚을 탕감 받았을 때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이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그 기억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을 빚진자를 그렇게 막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것을 탕감 받았으면서 지금 사소한 것 가지고 트집 잡으며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누구의 모습 같습니까?

확실한 것은 결코 우리 기독자의 모습이 이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특별히 신앙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은혜가 떨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 처녀 비유는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왔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서 호롱불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되겠지!’ ‘문은 열리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는 저들의 호롱불에서는 이제 불빛이 아니라 그을음만 올라옵니다. 왜인가요? 기름이 떨어지면 심지를 태워먹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심지가 타면 새까만 그을음만 올라오죠!

이에 우리 크리스찬들은 항상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고갈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을 무리하게 하거나 운동을 무리하게 하면 몸이 금방 지치듯,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유독 쉽게 감정의 고갈을 불러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소한 것에 꼬투리를 잡고, 사소한 것 가지고 상처주는 사람들, 별것 아닌 것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을 자기 밑으로 밀어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조직에서 항상 우두머리가 되고 하는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피곤해 집니다. 왜인가요?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감정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 오래 있으면 쉽게 피곤한 것입니다.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고갈의 문제는 영적인 부분에서도 발생합니다. 우리의 영은 시끄럽고 복잡하고 상처주는 말과 행동이 난무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쉽게 고갈됩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시간이 있어도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것들만 검색하게 만드는 이 종말론적인 환경은 우리 영혼을 쉽게 고갈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을 은혜로 계속해서 채워나가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기름을 넣어야 자동차가 굴러가듯이, 적어도 일주에 한번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아와 기도로 은혜 받던지, 찬양으로 은혜 받던지, 말씀으로 은혜 받던지, 아니면 옆에 있는 교우들의 헌신과 봉사와 나눔에 은혜를 받던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채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속원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고갈되어가지 않게 우리 자신을 잘 지키십시다. 연료통에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눈금을 점검합시다. 그리고 떨어져가는 것 같으면, 빨리 은혜의 자리로 달려가 다시 채우십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계속 이어가야 할 인생의 과제 중 하나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항아리 아우까지 생수를 가득 채웠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항아리를 채워 가야 합니다. 오늘 내 연료통은 어떻습니까?

 

2. 되새김질 하자!

소는 오전에는 풀을 열심히 뜯고, 오후에는 하루 종일 그늘에 앉아 되새김질 합니다. 소가 그렇게 되새김질 하는 이유는 그래야 소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소화가 돼야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죠!

그런데 사실 우리도 되새김질 하며 살아갑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 해보셨을 텐데, 한번 읽은 것을 계속해서 머리에 담아두기 위해서는 복습이라는 되새김질을 해야 머리에 오래 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공부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닙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금방 잊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되새김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를 되새김질 하는 것일까요? 그 비밀이 찬송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에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를 되새기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 이것이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감정이 메마르지 않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너무 팍팍한 인생을 걸어오시느라 감성이 메말라버리신 분이 계시나요?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혹 우리 가운데 영혼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계신 분 계시나요? 나를 위해 골고다 언덕 오르신 주님을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혹 우리 가운데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았던 사람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며 갑질을 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하나씩 적어 보십시오.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의 차이는 사실 백지장 한 장의 차이와 같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되새김질 합니다. 은혜 받은 시간, 감동으로 충만했던 시간, 기쁨과 환희 시간들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은 불행했던 기억들만 끄집어냅니다. 억울했던 순간들만 생각해 냅니다. 그리고는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도로 찾듯이, 토해 냈다가 다시 담아 넣고, 토해 냈다가 다시 담아 넣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면 악순환만 반복되죠!

여러분의 삶이 행복으로 가득해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되새기십시오. 이제부터는 좋았던 순간들만을 기억에 저장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영성이 살아나고, 우리 감성에 새 싹이 움 틀 것입니다


3. 알자!

오늘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혹시 자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을 탕감 받았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자각하지 못하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가 짠맛과 단맛에 점점 무디어 가듯이, 우리의 마음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못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별것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뎌지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시편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노래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1,2) 다윗은 왜 주야로 묵상해야 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뎌져버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속원 여러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가는 일에 매진하십시다. 나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보십시다. 어떤 이들에겐 기도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성경을 읽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다른 이들을 돕는 봉사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에겐 좋은 책들을 통해서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신자들은 성화를 넘어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해 나아 가야함을 역설(力說)하고 있는데, 그렇게 우리를 그리스도의 완전으로 이끄는 도구들을 가리켜 은혜의 방편(方便)’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고 계발해가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냉랭하고 차갑고 갑질하는 마음이 아니라,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했던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되새김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서 이 말씀이 보여질 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 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18:21,22)

이 말씀이 우리 삶과 가정 속에서 보여지는 우리 속회되기를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내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주소서.

2. 어려움 속에 있는 속원들을 치유해 주소서.(중보기도)

3. 전도의 문을 열어 주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속회가 부흥하게 하소서.

 

* 속회헌금 - 찬송 ________ 

* 헌금기도 - 인도자

* 광고 - 속장

* 주기도문